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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가는 여인 삼의당 김씨 부부

글쓴이 : 가람기자 날짜 : 2019-12-29 (일) 14:17 조회 : 179


오늘은 거창에 계시는 소설가이신 표성흠작가님과 동행한 문인들이 김삼의당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삼의당과 관련한 길라잡이를 원하시네요..

표작가님은 남원문화대학에서 "지리산문화해설사 자격과정"을 개설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신데, 이른이의 중간쯤에 계신데, 여전히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저희 문화대학에 강의도 해주셨고, 거창과 함양지역의 길라잡이도 해주셨기에 몇차례 만남이 있으셨던 분입니다.

중앙이나 관련한 부분에 직접적인 영향력이 있으셔서 몇분 교수님들의 추천으로 남원문화대학을 직접 참여해보시고, 지리산문화해설사자격과정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분입니다.

김삼의당에 대한 소재가 너무 좋다고 소설로 쓰고 싶다고 하시네요. 유명소설가분들에게도 구미가 당길 정도가 되었음을 보면 김삼의당의 한시나 또한 삼의당과 하립부분의 삶이 상당히 소문이 나긴 난듯합니다.  특히 표작가님은 여행작가로도 유명하신 분입니다.

김삼의당은 여염집 여인으로서 조선시대에 한시를 가장 많이 남기신 분입니다.  남원고을 교룡산자락 서봉방에서 영조45년 기축 10월 13일 한날 한시에 같은동네에서 태어난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씨는 열여덟 나이에 화촉을 올렸다고 합니다.

참으로 천생연분이 아닐 수 없죠....
이들은 특별하게도 모든 삶을 한시로 기록 했으니 그 시대의 몰락한 사대부가의 집안을 일으키고자 하는 몸부림과 그리고 시대적 삶과 삼의당과 하립의 바람직한 삶을 알수 있습니다.

삼의당 부부는 태어나서 부부가 되어 33세까지 남원 서봉방에서 살다가 결국은 그들이 꿈꾸고, 희망하던 과거급제를 이루지 못하고, 선영들이 사는 진안 마령으로 이거를 하여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이러한 삶속에서 270여편의 시문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삶의 배경지이자 또한 삶의 터전인 삼의당과 하립의 흥적을 찾아가보는 기회를 가져 봅니다.

답사순서는 시간대별로 정리를 해서 소개를 해봅니다. (김삼의당과 하립부부의 삶의 흔적을 위주로..)

운흥정 - 유천마을과 교룡산 시비- 진안방화리 이거지 및 생활상 - 묘소 - 명려각 (초상화 )


세종 4년(1422) 하연(河演)이 전라도도관찰출척사병마도절제사(全羅道都觀察黜陟使兵馬都節 制使)로 있을 때 남원 중방현(中坊縣) 객사에서 유숙한 일이 있었는데, 꿈속에 어떤 백발신옹(白髮神翁)이 나타나 말하기를,

"제 손자 다섯이 대감의 반찬거리로 잡혀갔으니 죽이지 마시옵기를 바라나이다."라고 하며 시(詩) 한 수를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시는,(용성지, 남원지 자료)

용문산을 아홉 번 오르고 (九登龍門上)
큰 바닷물을 세 번 마셨는데도 (三飮天海水)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이때 (未及成龍時)
장유자라 하는 자에게 잡혀갔나이다. (命付發孺子)
라는 내용이다.

하연이 놀라 잠을 깨어 좌우를 살펴보니, 그 노인이 간데없어 너무나 괴이한 일이라 사령들을 불러 명하기를, "나를 대접하기 위하여 준비해 놓은 물건은 빠짐없이 그대로 대령토록 하여라."하니, 꿈속 노인의 말에 맞는 물건을 찾았는데, 그 속에 다섯 마리의 잉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생명이 위급하여 서둘러 잉어를 잡아 온 장본인을 속히 찾아오라고 명하자 곧 어부 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 고장에서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어부 장유자(張孺子)입니다."

어부의 말에 놀란 하연이 잉어를 잡아온 산동(山洞) 못에 지체 없이 갖다 넣으라고 명하자 어부가 그대로 시행하였다. 삼일 후 또 꿈속에 백발신옹이 나타나 말하기를,

"손자 다섯을 살려 주시니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말을 하고, 대감의 소망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자, 하연이 본래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부탁할 만한 소망은 없으나 세상 사람들이 용(龍)의 형상을 보고자 하나 용의 형태를 본 사람이 없으니 한번 봤으면 한다고 하자 백발노인이 하는 말이,

"소인들은 용체(龍體)를 보면 생명이 감수하는데 대감께서는 대인이시라 용체를 봐도 무방하리라. 날이 밝으면 곧 산동 못가로 나오시오."

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날이 밝자 못가로 가니 갑자기 먼 산 그림자가 와 못 전체를 뒤덮고 안개가 자욱이 끼여 지척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즈음 황룡(黃龍)이 나타나 물속에서 왼쪽으로 굽이치더니 다음에는 오른쪽으로 굽이치다가 마침내 머리를 드러내는데, 머리의 크기가 말(馬)의 머리만하고, 흰 수염에 검은 뿔(黑角)이 있어 한참 동안 익혀 보고 있는 동안에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그 고을에서는 어부 장유자의 이름을 가능한 한 거명치 않는다고 하며, 혹 장유자의 이름만이라도 듣고 과거를 보면 그때마다 낙방한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지금도 산동 못가에 가보면 바위 위에 새겨진 글이 수없이 많은데, 그 중에 하연이 쓴 「용흥사(龍興詞)」라는 글과 「용견죽하(龍見竹下)」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또 이 못가에는 호남 일대의 선비들이 건립한 운흥정(雲興亭)과 견룡유적(見龍遺積)의 비각이 있어 생전에 하연이 지었다는 「용견시(龍見詩)」가 전해진다.(용성지, 남원지 자료)

산동의 바윗돌은 크고 높으며 (山洞之石落落)
산동의 푸른 물은 깊고 깊도다. (山洞之水淵淵)
황국화로 빚은 술 즐거운 이때 (黃花白酒堪樂)
구월이라 가을풍경 장히 좋구나. (正値九月風煙)


우리네 생각엔 참으로 답답하신 어른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작 용을 워하실께 뭔가...
하긴 그래서 사후에 조정에서 청백리로 록선하셨겠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네 생각으론 더 마른 부와 권력을 원하지 않았겠는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여간 선생은 다음 날 용을 볼 수 있었다 한다. 소원을 성취한 기쁨에 연못 암벽에 새겼다는
"용견죽하(龍見竹下)라는 글씨가 남겨져 있으며, 또한 이렇게 좋은 경관에 유래까지 얽혀있으니 정자(운흥정)가 세워짐은 당연함이 아닌가.. 



운흥정은 일제의 암울한 시기에 지역의 선비들이 시름을 서로달래며, 1920년경 문학단체인 시사계에서 정자를 세우고 지역의 미풍양속과 시의 기품을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된 정자다. 휘날리는 필체의 운흥정과 내부에 걸려진 현판들이 주변 선비의 활동을 새겨본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세워진 방호정이 있으며, 매년 봄가을에 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하립의 탄생과 이름을 짓는데, 예언을 했다고 하는 용쏘입니다.
하립은 운흥정의 전설인 용견설의 주인공이신 당시 전라감사 하연관찰사의 12대손 이라고 합니다. 이때 운흥정에서 나타난 5마리 용중에 3번째 용이 하립의 태어남을 예견했다고 해서 "립"자를 조합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바위의 절벽에는 龍見竹下(용견죽하)가 새김되어 있다.



남원 교룡산성 줄기 서봉방에서 한날 한시에 태어난 삼의당과 하립은 부부연을 맺고 33세까지 살았다는 마을입니다.
서봉방의 어느지점에서 살았는가는 모르지만, 시문속의 내용을 토대로 유추해 보면 유천마을이 아닌가 합니다...



교룡산성 시비공원의 김삼의당 시비 앞에선 표성흠 작가..


김삼의당 부부가 이거하여 살았던 이거지....
지금은 헐려 버린 공터에 잡풀만 무성하고 시래기 건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뒤의 시래기 건조장에 작은 가옥이 있었는데, 그 상낭에서 시문이 한바구니 가득하게 나왔다고 합니다.


진안 방화리 마을의 앞뜰 농경지를 지나면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에서 흐르는 작은 하천가의 절벽에 세워진 "晩趣亭"  


송객정이란 현판이 안쪽에 걸려져 있음을 보면 당시에는 마을 어귀쯤에 송객정이란 정자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예측을 해 본다.


만취정의 깍아지른 절벽에는 하립오형제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진양하씨 오현장구지대(晋陽河氏 五賢杖?之臺)란 표현이 새김되어 있습니다.


삼의당 하립부부의 묘



진안에서는 김삼의당과 하립부부를 기리고자 기념사업회와 또한 초상화를 모시는 명려각을 새워서 부부화답시탑 등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여러가지 후인들의 귀감이 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부화답시 탑비

↑김삼의당 하립 부부 초상화 (명려각)

 
이렇게 답사를 마치고 마이산 주차장에 도착하자 어스름이 비쳐온다.  항상느끼는 거지만, 답사후의 사람들은 나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는 느낌을 같는다는 사람들을 자주본다.  모두에겐 삼의당부부와 유사한 희망을 갖고 그리고 노력했지만,  뒤를 되돌아 보면 어쩌면 허무인지도 모른다. 인생무상이란 말이랄까! 그 김삼의당과 하립부부의 덧없음이 지금은 그들의 시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혹은 그들의 흔적을 찾아서 인생을 방황하듯 또 다른 삶을 찾아 방황하고 있음이 아닌가...

만취정 절벽에 새겨진 오현장구지대란 말처럼, 어딘가에 지팡이와 신의 역할을 하는 의지할 곳을  찾아서......

※ 김삼의당의 시문은 전문성있는 설명이 요하기에 삼의당고 및 삼의당시문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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