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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로 돌아보는 남원 감성길 탐방!

글쓴이 : 시스템관리자 날짜 : 2018-04-20 (금) 21:41 조회 : 301



남원시(시장 이환주)에서는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하고 청소년들의 신체건강을 위하여 몸소 두발로 실천하는 문화이해 프로그램을 강일석 해설사님이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불안전한 때에 고도의 상흔이 담긴 ICT(게임)의 중독의 피해는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정보화의 범람이 청소년들의 건강한 육성발전에 저해되는 요인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해소책의 일환이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한 지역사회 문화유산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산업사회의 발전과 소비성향의 시대에 따라 경제적인활동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속에 청소년들의 환경은 오히려 좋지 않은 상황에 있어 아직은 미완성인 청소년들이 여러가지 유혹으로 부터 개방되어 있다 하겠다.

이러한 때에 지역사회의 문화적 이해를 통한 고향사랑하는 마음과 나아가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함양하고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민주시민으로의 육성을 위한 노력은 더욱 필요하다 하겠다. 


 
용성관을 둘러보고 설명을 합니다. 남원이 설립되기 위한 여러 가지 지형적인 상황과 조건 그리고 용성관의 역할 등을 설명합니다. 용성관의 바로 앞인 남쪽에는 관아가 있었으며, 그 정면의 남문앞에는 신선의 세계를 나타내는 광한루가 자리합니다.

춘향사당 : 춘향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사당의 문의 위 에는 거북이 등에 토끼가 타고 있습니다. 남원에는 몇곳에 이와 유사한 모형의 조각이 있습니다. 보통은 춘향의 사당이기 때문에 수궁가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하지만, 불교적으로 보면 놀랜 토끼(중생)을 부처인 거북이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나누면서 즐겼던 ‘그네’네요..아이들 인솔교사께서 그네를 힘껏 밀어주고 있습니다.

삼신산중 영주산(한라산)이라 상상하는 섬입니다. 옛 광한루를 조성당시 송강이 아꼈던 동기를 그리며, 이름이 같은 배롱나무(자미화)를 심었다고 합니다. 후에 영주각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삼신산(방장산, 봉래산, 영주산) 중 봉래산을 의미하는 섬입니다. 송강은 이곳에 대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또한 방장산에는 연정을 짓고, 호수에는 연을 가득심었다고 합니다.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만난다는 이야기를 상징하는 다리입니다. 까치와 까마귀가 견우와 직녀가 만나도록 다리를 만들어 준다는 신화입니다. 광한루원을 신선세계인 월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까마귀와 까치가 다리를 놓았다는 오작교를 건너 봅니다. 곧 견우와 직녀가 되어 보는 거죠..

완월정입니다.  지상의 사람들이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즐기기 위해 지은 것으로 달이 뜨는 향해있는 수중누각이다.

용성지(龍城誌)》에 의하면 석돈은 성을 수호하는 당산신을 섬기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북문을 지키는 당산이라 하였다. 《남원지》(조성교)에도, 고로(古老)들의 말에 의하면 용성관(龍城館)의 후면에 옛날 어마어마하게 큰 돌무덤이 있어 이를 석돈(石墩)이라 하는데 석돈 위에는 기화요초(奇花瑤草)가 무성하고 고목(古木)이 우거져 때로는 두견새가 날아와 깃들이고, 철따라 두루미도 찾아오곤 하여 자못 이채를 띠웠다. 그 위치(位置)는 용성관 뒤라 하였으니 지금 남원역(南原驛) 관사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부근이다.

《남원지》에 따르면, 용성관은 옛날부터 있어온 객사(客舍)로서 본래 이태조대왕(李太祖大王)의 전패(殿牌)를 모시어 둔 곳이다. 이곳은 남원부사들의 이취임식과 관리들의 접대와 유숙이 행해졌던 곳이다. 용성관은 규모가 웅대하여 전국 객사중 손꼽히는 건물로, 광한루(廣寒樓), 관왕묘(關王廟)와 함께 남원의 고대건축물의 3걸이었다. 그러다 정유재란 때 병마사 이복남이 본관(용성관)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태조(太祖)의 전패(殿牌)마져 왜적(倭賊)에게 욕을 당할까 염려하여 불태웠다. 그러다가 광해군 12년(1620)에 부사 최여립(崔汝立)이 재건했으나 낙성(落成)후 화재로 전소(全燒)됐다. 숙종(肅宗)16년(1690)에 부사 정협(鄭悏)이 다시 완성했으나 6.25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됐다. 그동안 용성관이 빈터로 남아 있다가 907년 4월 1일 용성초등학교가 들어서게 됐다. 즉 지금의 용성초교가 용성관 자리라는 얘기다.  


남원읍성은 정유재란시 남원성을 지키기위하여 전쟁을 한성..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성은 산의 지세를 이용하여 성을 구축하는데, 남원읍성은 평지에 4각형으로 설치된 대표적인 성이다. 이 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시다 목숨을 바친 만인의 영령을 모신 곳이 만인의총입니다...




편집실 2018-04-22 (일) 23:34
아이들에게 봉사시간이나 아니면 체험활동 시간을 주는 방안을 고민한다면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참여자도 많을 뿐 더러 지역애 학생들에게 잇점이 되어 대학진학에 도움은 물론, 외지로 유출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가능한 체험이나 청소년 활동 시간을 준다면 더욱 가치가 클것으로 예상되며, 전국의 학생들이 남원을 찾는 상품이 될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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