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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음악]

“하룻밤, 축제장이 되는 마을의 놀이마당”

글쓴이 : 편집실 날짜 : 2017-01-04 (수) 11:45 조회 : 176


“하룻밤, 축제장이 되는 마을의 놀이마당”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남사당과 사당패, 그리고 걸립패의 차이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명칭이 비슷해서 분별이 어렵긴 하지만, 심우성이 쓴 남사당패연구를 참고해 보면, 사당패의 조직은 그 주된 구성원이 여자들이어서 <여사당>으로도 통했다는 점, 표면상으로는 모갑이가 이끄는 패거리 같지만, 실제로는 여자들이 중심이 되어 가무희를 펼치고 그 수입으로 살아가던 집단이라고 했다.  :namespace prefix = "o" />

그리고 193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 걸립패란 우두머리 화주(化主)를 정점으로 승려나 승려출신의 고사꾼이 있고, 보살이나, 풍물잽이, 연희자들, 탁발 등으로 조직되었으며 모두 15~6명 내외로 구성된 조직이란 점, 이들 걸립패는 반드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찰의 신용장 같은 신표(信標)를 제시하고 집걷이를 하게 되며 풍물놀이로 시작해서 터굿-샘굿-성주굿 후에 비나리를 하고 받은 곡식이나 금품을 그들의 수입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남사당패는 우두머리 꼭두쇠를 위시하여 그 밑으로 보통 4~5명의 연희자를 두고 있는 작은 조직에서부터 크게는 40, 50명 이상을 거느린 조직도 있었으며 대부분은 일정한 거처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집단이었다는 점, 큰 집단은 꼭두쇠 밑에 곰뱅이쇠가 있고 뜬쇠라 부르는 남사당놀이의 기능자 중에서 각 연희분야의 선임자들이 대략 13~14인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뜬쇠 밑으로는 가열이라 부르는 기능자들이 있었으며 그 아래 초보자나 신입의 삐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들은 풍물에 이어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의 연희종목을 펼쳐 보이는데, 거의 일정한 보수가 없이 숙식만 제공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 남사당 6마당 살판(문화재청 제공)
▲ . 남사당 6마당 살판(문화재청 제공)

이들 남사당패들이 벌이는 놀이에서 보이는 특징이라면 어느 한 지역의 특성을 대표한다는 지방적 특성은 희박하다는 점이다. 남사당패 출신의 꼭두쇠였던 고 전근배 옹은 <경상도 벅구>, <전라도 장고>, 또는 <경기도 꽹과리>라는 말을 자주 썼다고 하는데, 이는 각각의 악기들이 저마다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로 서로가 하나가 되어 놀았다는 점을 단순하게 표현한 말로 볼 수 있다.

고 최성구(崔聖九)의 구술에 의하면 풍물잽이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 두렁쇠라는 말은 마을마다 비치되어 있는 사물을 주로 마을 농민들이 논두렁에서 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주로 두레, 또는 그 밖의 대소명절에 치는 비전문적인 잽이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난장쇠라는 말도 있는데, 말 그대로 시골 장터에서 매년 한번 쯤 열렸던 난장판의 풍물잽이를 지칭하는 말이고, 주로 그 지방의 두렁쇠 중에서 능숙한 사람으로 편성되었다는 것이다. 난장판의 규모가 클 때는 남사당패나 솟대쟁이패가 초청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비나리쇠도 있는데, 이는 걸립패를 비나리패라고도 하는데서 생겨난 말 같으며, 걸립패에 소속된 풍물잽이를 이렇게 통칭하는 것으로 부르고 있다. 원래 예전부터 잽이, 또는 잡이는 한자어로는 차비(差備)라고 쓴다.

차비는 척()에서 유래한 말로 보인다. 다시 말해 삼국사기 같은 옛 문헌에는 가야금악사를 금척(琴尺)이라 했고, 노래잡이는 가척(歌尺), 춤꾼은 무척(舞尺)이라 불러왔던 것이다. 조선말기의 각종 진연의궤에 보이는 대금차비, 현금차비의 용례라든가, 또는 현재에도 피리잽이, 해금잽이, 가야금잽이 등이 모두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척에서부터 유래한 말이라 하겠다.

남사당패 풍물놀이의 악사를 잽이라고 하는데, 그 기능이 능숙한 사람들을 별도로 뜬쇠라고 부르고 있다. <>역시 <잽이>, 즉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풍물잽이에 관하여 심우성의 남사당패연구에 따르면 최성구 옹은 오히려 서툰 <두렁쇠><난장쇠>에서는 배울 것이 있지만, <비나리쇠>에 대하여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근년에 남사당패나 솟대쟁이패가 배가 고프면 비나리패에 팔려 갔는데, 그전 비나리쇠만의 풍물은 별것이 아니었고, 뜬쇠라도 비나리쇠에 들어가면 <절 장단>이 묻어서 쇠가락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운하 명인과 재자들의 풍물굿

▲ 지운하 명인과 재자들의 풍물굿


<꼰두쇠>에 대하여 판제는 볼 것이 없으나, 무동놀이벅구놀이채상놀이 등은 뜬쇠가 따르지 못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뜬쇠와 꼰두쇠는 서로 교류된 적이 많았고, 실제로도 두 패거리의 소속된 사람들이 서로 왕래가 있었으며 부족한 점은 품앗이로 일러줬다고 하는 점에서 상호 교류가 많았음은 짐작이 된다.

남사당패놀이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놀이판을 필요로 하는 놀이가 바로 풍물놀이이다. 원래는 지정된 놀이판만이 아니고 남사당놀이를 벌인 마을 전체의 큰 마당과 거리, 그리고 골목에서의 <길놀이>까지가 남사당의 놀이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사당패놀이는 고정된 놀이판 이외에 마을의 큰 마당이나 집집의 작은 마당들, 그리고 지역의 서민들이 사는 거리와 골목 등이 다 놀이판이 되어왔던 것이다.

어두워진 다음, 풍물잽이들은 복색을 차려입고 사물을 울리며 마을을 돌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오늘 밤, 놀이판에 많은 구경꾼을 끌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이때 상식적인 판단이지만, 이 길놀이에 마을 사람들의 참여도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길놀이를 따라 동행하게 되면 이 놀이패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고 따라서 놀이에 참여율이 높다는 점을 알게 하는 것이고, 적으면 무관심을 나타낸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당일 행해질 놀이 전체의 성패와도 직결된다 하겠다.

긴 길놀이 행렬이 놀이판에 도착하면서 판놀이가 시작된다. 뒤따랐던 마을 사람들은 둥글게 자리를 잡게 되는데, 이때 풍물잽이들이 놀이판을 설정하기 위하여 도는 원() 안이 놀이판이 되는 것이고, 그 밖은 자연스레 관중석이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연희자와 구경꾼이 하나가 되어 공감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지금처럼 영화도, 연극도, 음악회도, 방송매체도 일반화 되지 못했던 시절, 다양한 기교와 구경거리를 지닌 남사당패들이 동네에 들어오게 되면 그날은 밤늦도록 잔치의 횃불이 훨훨 타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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