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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원동학

글쓴이 : 시스템관리자 날짜 : 2018-05-28 (월) 01:19 조회 : 336


1) 남원동학

남원동학혁명후 핍박이 심하여 거의 숨겨지거나 지역에서 살지 못하고 떠났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나마 그간 조사한 자료를 정리한 내용을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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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성지인 교룡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알려진 전라북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9호로 1973년도에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룡산성 둘레 길이는 3,120m에 이르고 있으며, 산의 정상 높이는 해발 518m이고, 정상에서 능선을 감싸 안은 포곡식 산성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군창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도 남원의 군사적 요충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성내에는 문지와 수구, 옹성들의 시설들이 남아 있다.
또한 선국사 사찰을 비롯하여 은적암 등 암자터와 별장청, 군기터 등 크고 작은 유적지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교룡산성은 어원대로하면 “용중에 가장 용맹한 용”이란 뜻이죠... 또한 황룡이라고도 부릅니다. 처럼, 교룡산성은 남원읍성과 한세트로서 행정성인 남원읍성의 비상시 피난하는 성입니다. 일제강점기엔 금을 채광하는 금광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오르다 보면 어느 지역에선 땅이 쿵쿵하고 울리는 현상을 느낄 수 있다. 밀덕암은 최재우 선생이 동학의 남원은 최제우 선생이 거주하면서 동경대전을 집필하였고 동학이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사상적 이론은 완성한 동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은적암이란 현판을 걸었다고 한다.

남원동학은 1861년 12월 15일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께서 광한루 아래 오작교 주변 서형칠(약방)집에 찾아와 머물렀고, 주인의 생질 공창윤 집에 수일간 머물면서 서형칠 등 6명에게 포교하면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후 교룡산성에 있는 은적암(덕밀암)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곳에서 최제우는 동학의 중요 경전인『논학문』『권학가』『도수가』『검가』 등을 저술하였는데 그 가운데 1862년 1월에 지은 『논학문』에서 동학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기술하였다. 그리고 이후부터 동학이라는 명칭으로 포교가 시작되어서 남원이 경주와 함께 동학 제2의 성지라 할 수 있다.

이후 1873년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이 임실 청웅에 와서 포교 활동을 하고 최봉성 등이 도를 전수받았다. 최봉성은 남원에 거주하는 사위 김홍기에게 도를 전하여 입교시켰다.

남원둔덕 출신인 김홍기는 1889년 포덕의 선구가 되어 종형 김영기 등 많은 사람을 포교하였으며, 진안, 임실, 장수, 무주, 용담, 순창, 남원, 구례, 곡성, 옥과 등을 돌아다니면서 포교활등을 전개하여 포 5,000여에 이르는 대접주가 되어 남원지역의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한편 남원의 동학은 수운 최제우가 순교하자 1890년 동학교도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교조 신원운동이 활발해졌고, 2세 교주 최시형은 동학교도들을 삼례에 집합시키게 되니, 관에서 동학교도들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소장을 올릴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좌도에 남원출신 류태홍, 우도에 전봉준이 자원 출두하여 관찰부에 소장을 제출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류태홍은 좌도의 지도자로 추앙을 받게 되었다.

이후 동학농민군들의 전주성 점령과 전주화약체결로 각 고을에 집강소가 설치될 때 동학의 대접주 김개남이 1894년 6. 25일 남원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남원은 전라좌도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고, 전봉준은 전라감사 김학진과 회담 후 7. 9일경 남원으로 내려와 김개남과 여러 접주들을 만나 의논해서 7.15일경 수 만 명의 교도들이 참석한 남원대회를 열면서 49일간 머물렀다. 이때 김개남은 5영을 설치하고 정비하여 11월에 북상하였다.

김개남이 북상하자 운봉의 박봉양민보군과 방아치에서 전투를 벌여 농민군이 참패를 당하였다. 이때 박봉양은 남원성을 점령하여 김홍기 등 동학지도자들을 체포하여 처형되었다.

류태홍은 5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순천 방면으로 달아나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살아남았다.

이후 동학정신은 일제항일운동으로 이어져 남원교도였던 김형진은 김구와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이러한 남원동학 정신은 자유당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정신으로 이어져 김주열 같은 열사가 남원에서 배출되었다.

이와 같이 동학혁명의 정신이 일제시대 항일운동으로 이어지고 해방이후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정신으로 이어진 예는 남원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류태홍의 진술로 최병현이 기술한 『남원종리원사부동학사』가 간행되어 남원동학의 위상을 높이는데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천황봉 2018-05-29 (화) 14:56
안녕하세요?
좋은 자료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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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관리자 2018-06-16 (토) 11:52
그후 후손들에게 전해진 뒷소리도 귀 담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어디나 가족들에 의해서 나올 소리지만, 시대적 배경이나 또한 상황들을 보면 당시엔 가문을 세우기 위한 노력이 호국이라는 차원이상으로 내세우는 상황였음도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김개남이나 전봉준 집안역시 가문을 앞세우는데, 크고 적고를 떠나서 어느정도는 기대를 했다 할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개남 장군의 남원입성과 장악은 김홍기나 류태홍의 입장에선 우호적일 수만을 없을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알수 없지만, 애써 일궈논 자리를 낙하산으로 내려와 차지한 꼴이 되니까요... 이래서 김개남이는 과격한 모습들을 많이 보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한 예상을 할수 있는게 지금 김홍기선생의 후예들에 의해서 그러한 사항들을 충분히 예상해 볼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튼 김개남은 남원에 낙하산으로 내려와 최고의 지도자로 군림을 했으며, 또한 과격한 행동과 각종 전투에서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역으로 생각해 보면 엄청난 군사력을 가지고도 패배가 계속 된다는 것은 군을 마음으로 통치를 못했기 때문에 일사분란함이나 또는 지휘계통이 흔들렸을 수도 있기 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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